실험음악 이끄는 위사(WeSA) 주인공
11~12일 전자음악·오디오 아티스트 축제 '소닉블룸 2024' 열어
"전자음악은 자유로움…뭐든지 할 수 있죠"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우리의 한계는 곧 사운드의 한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알고 있는 소리로 우리는 세계를 해석하기 때문이다. 국내 일렉트로니카 1세대로 통하는 가재발(이진원)은 그래서 우리 음악 신(scene)의 인식을 넓혀준다. 기존 대중음악 문법의 제약을 뚫고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사운드를 발굴해줘서다.
미국 뉴욕에서 레코딩 엔지니어로 음악 업계에 발을 들인 가재발은 다양한 음악을 종횡무진했다.
2004년 테크노 음악 프로듀서로서 유럽 유명 테크노 음반 사이트인 영국의 튠인에서 2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K팝 작곡가로도 잠시 활약했다. 하이브 전신인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소속이던 그는 방시혁 하이브 의장과 댄스음악 프로젝트 '바나나걸'의 프로듀서로 나서기도 했다. 그러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음악원 음악테크놀로지과에 입학, 교수인 장재호와 오디오 비주얼 그룹 '태싯그룹(Tacit Group)'을 결성해 사운드 아티스트로 활동했다.
그러다 2014년 오디오비주얼·실험 음악 페스티벌 '위사'(We are sound artists·WeSA)를 연 것을 시작으로 혁신의 선봉이 됐다. 가재발과 위사가 오는 11~12일 서울 성수동 에스팩토리(S-FACTORY) D동 3층에서 여는 전자음악·오디오 아티스트 축제 '소닉블룸 2024(sonicBLOOM 2024)'은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자리다.
전자음악의 선구자인 미국 출신의 수잔 치아니, 현대 전자음악의 흐름을 주도하는 네덜란드 출신의 콜린 벤더스, 일본 오디오·비주얼 아티스트 료이치 구로카와 등 거물급들이 대거 나온다. 사운드 효과를 내는 여러 이펙터를 케이블을 서로 연결·조립 원하는 소리·효과를 내는 모듈러 신시사이저에 최근 주력 중인 가재발도 첫째 날 공연한다.
위사 페스티벌이 숙성해 또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그렇게 가재발의 '맨땅에 헤딩', 아니 우공이산(愚公移山)이 성과를 보고 있다. 다음은 최근 서울 마포구 망원동 위사에서 가재발과 최유정 브랜드 디렉터를 만나 나눈 일문일답.
-'소닉블룸 2024' 기획의도는 무엇입니까?
"'위사 페스티벌'은 기본적으로 '이머징 아티스트' 작가들을 소개하는 게 큰 목적이에요. 근데 '기존 게 뭐냐'를 알아야지 새로운 걸 할 수 있잖아요. 하지만 한국 신(scene)이 작으니까 일본, 유럽의 오디오 비주얼·사운드 시장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를 소개하는데 한계가 있었어요. '소닉 블룸'은 '위사 페스티벌'보다 규모가 크니까 아티스트들을 소개할 수 있는 힘을 냈죠. 그런 아티스트들이 국내 신을 교육시키는 동시에 아티스트들한테도 한국의 청중이 얼마나 목 말라 있고 열정적인지를 보여주면서 교류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거장들을 초대하실 때 고려한 지점은 무엇인가요?
"파이오니어(pioneer·선구자)적인 사운드 작가가 우선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소개가 많이 안 된 분이요. 흥행성은 떨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흥행적인 측면이 있었다면, 다른 큰 축제에서는 불렀겠죠."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선구자적인 건 무엇인가요?
"질감 측면의 사운드라기보다는 인생 스토리를 들으면 왜 그 분들이 선구자인지 알게 됩니다. 수잔 치아니는 예전에 피아니스트로서 우리나라에 오신 적이 있었대요. 그런데 이 분이 전자음악에 빠지신 거죠. 남성들이 굉장히 우위의 자리를 차지한 분야에서 여성이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셨겠어요. 그런데 여성이라는 수식을 빼고 객관적인 잣대를 댔을 때도 굉장히 잘하세요. 그리고 70대 후반이신데 아직도 활발히 열정적으로 공연하세요. 저희 페스티벌 이전에 스페인 이비사에서 공연하시고 한국에서 공연하신 뒤엔 바로 멕시코로 가세요. 여성 음악 작곡가를 다룬 다큐 영화 '일렉트로니카 퀸즈-전자음악의 여성 선구자들'(Sisters with Transistors)에서도 제일 먼저 나오는 분입니다."
-콜린 벤더스는 어떤 뮤지션입니까?
"코로나 팬데믹으로 락다운 됐을 때 자신의 음악을 만드는 걸 처음부터 끝까지 유튜브 라이브로 중계를 하면서 실시간 소통을 한 분이에요. 그렇게 시리즈를 70개 가까이 만들었어요. 참신한 아이디어로 관객과 교류를 한다는 것이 대단했죠. 그 열정에 되게 놀랐는데 공연할 때도 에너지가 엄청 나요. 음악, 사운드 모두 좋지만 이 분이 높게 평가 받는 데 퍼포먼스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전자음악에 매력을 느끼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전자음악은 자유로움'이에요. 그러니까 뭐든지 할 수 있죠. 음악이라는 사운드 범주 안에서 뭐든지 시도할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또 형식에 구애 받지 않아도 괜찮고요. 몇십 초 단위부터 한 곡이 몇십 분 되는 것들도 있으니까요. 또 기승전결을 갖춰야 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 흔히 얘기하는 사비(절정의 후렴)가 꼭 있어야 되는 것도 아니죠. 그냥 a만 계속 가도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앰비언트처럼 있는 듯 없는 듯 해도 상관없고 말을 안 해도 괜찮죠. 전 엔지니어도 했었으니까 소리의 스펙트럼도 살펴보는데 꽉 찰 필요가 없고 낮은 소리로 만들어도 괜찮아요. 그런 부분들이 굉장히 자유로움을 줍니다. 잠깐 K팝을 할 때는 만들어 놓은 걸 그대로 따라 해야 되는 상황이 많았거든요. 특히 제 표현으로 음악을 다림질하는 게 싫었어요. 전자음악은 그렇게 안 해도 괜찮아요."
-전 선생님이 대단하시다고 느꼈던 지점 중 하나가 누굴 가르치셔도 될 만한 분이 한예종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신 부분입니다.
"개인적으로 K팝에서 탈출구가 안 보이던 때였어요. 자기 복제 시대가 저한테 온 거죠.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다르게 표현을 하려고 해도 툴을 가지고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이 많았어요. '소닉 블룸' 방향성과 마찬가지로 기존의 것을 알아야 새로운 걸 할 수 있을 거 같더라고요. 히스토리를 배우고 싶어서 학교에 갔어요."
-선생님 삶 자체가 온고지신 같은 느낌인데요.
"'맨땅에 헤딩'이었죠. 그런데 전자음악 매력은 끝이 없어요. 새로운 기기나 툴이 계속 나오니까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하죠. 계속 연구도 하고 흐름을 따라가야 하니까요. 근데 돈이 많이 드는 부담도 있습니다."
-최근에 구입하신 장비 중 소개할 게 있을까요.
"'모듈러 신시사이저'요. 예를 들어 바이올린이 있다고 해요. 몸체, 현, 튜닝키가 있을 텐데 만들어진 걸 사는 게 아니라 부품을 다 따로 사서 조합하는 거예요. 신시사이저를 만드는 데 이 회사·저 회사 부품을 원하는 대로 사서 조립을 하는, 말하자면 레고 같은 겁니다. 한 회사에서만 레고를 만드는 게 아니라 여러 회사에서 로고를 만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회사마다 특징이 있죠. 어떤 회사는 곡선이 더 들어갈 수 있고, 어떤 회사는 투명하게 만들 수도 있고요. 그런 것들을 조합하면 끝이 없어요. 국내에선 구입하기도 힘든데, 대부분 아날로그적인 작동방식이에요. 그래서 소리가 더 좋아요. 또 각 지역의 전기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하니까 굉장히 섬세하게 다뤄야죠. 공연을 하면 끝나고 관객 분들이 무대 위로 올라와요. 저랑 사진 찍는 게 아니라 모듈러 사진 찍느냐고 바쁘시죠. 하하."
-10년 동안 위사를 꾸려오면서 예년보다 신이 나아졌다는 것도 느끼시죠?
"위사에서 활동했던 작가들이 다양한 이벤트에 많이 초대되고 있어요. 이제 '위사 페스티벌'을 하면 매진이 됩니다. 관객층도 예전엔 학구적으로 접근하시는 분들이 많았다면, 지금은 패션·아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즐기러 오세요. 관객층도 굉장히 다양하고 화려해졌죠."
-최유정 브랜드 디렉터님은 가재발 선생님의 음악을 알리시는 데 어떤 고민을 가장 하고 계십니까?
"저희는 국내도 국내지만 세계를 바라보고 있어요. 각 나라마다 이런 신들은 조금씩 있으니까요. 그 신들하고 네트워킹을 해서 가재발뿐만 아니라 국내 아티스트들이 앞으로 활동할 수 있는 무대를 더 넓히는 거죠."
-가재발 선생님은 어떠세요?
"저희는 위사가 서울에 있는 축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냥 '사운드 축제'인 거죠. 약 400명이 지원하는데 저희가 평소 잘 접하지 못한 국가에서도 신청을 합니다."
-위사 건물 지하에 생긴 사운드 전문 공연장 '사운드 지하'에 대한 업계 관심도 큽니다. 건축 음향에도 크게 신경을 쓰셨다고요.
"실험적인 사운드를 선보일 수 있는 공간이에요. 예컨대 기타를 들고 와서 연주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소리 내는 하나의 도구로만 보는 거죠. 멜로디를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타악기처럼 쓸 수 있는 거예요. 어디에서 하기 힘든 사운드 실험을 계속 해봐야 '좋은 사운드'를 찾을 수가 있어요. 근데 사운드 실험을 하려면 사운드가 잘 들려야죠. 하지만 실험 음악 쪽은 너무 영세하다 보니 환경이 좋을 수가 없죠. 저희가 그래서 지하에 주안점을 둔 건 좋은 사운드를 들을 수 있는 환경이에요."
-지금 기반을 닦아주시는 것들이 '문화 다양성'에 크게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맞아요. 저희가 되게 주목하고 있는 키워드 중에 하나가 문화 다양성이에요. 다양성을 위해선 시장이 크지 않아도 되지만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하는 영역이 있죠. '사람들이 관심이나 있겠어' 생각할 수 있지만, 점차 관심을 갖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걸 확인합니다."
-우문일 수 있지만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좋은 사운드'는 무엇인가요?
"제가 글쓰기를 배우러 간 적이 있어요.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게 '글은 빼는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사람들이 자꾸 옆에 붙이는데, 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셨죠. 당시 저도 사운드가 불안하니까 뭘 자꾸만 넣은 거예요. 예를 들면 사운드 레벨 조절을 위한 이퀄라이저를 조작할 때 베이스 소리를 강조하고 싶다고 베이스를 올리잖아요. 근데 다른 소리를 깎아내서 베이스 볼륨을 올려야 해요. 올리는 건 없는 소리를 억지로 만들어 내는 것이거든요. 물론 두 경우 다 인위적이기는 해요. 하지만 후자가 훨씬 더 효과가 좋아요. '빼기의 미학'이죠."